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의 기계음과 선지급 간병 계약이 남긴 고독한 잔상

밤낮의 구분도 없이 기계 음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병동의 한구석에서, 저는 생명의 가냘픈 숨결을 지켜내기 위해 매일 밤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위를 걷곤 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임상 현장을 거치며 단단한 연륜을 쌓아가던 시절이었음에도, 오토바이 사고로 의식을 잃고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들어온 이십 대 학생 환자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스스로 호흡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목에 관을 넣고 차가운 인공호흡기가 뿜어내는 산소에 온전히 삶을 의지하고 있던 그 위태로운 모습 앞에,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처럼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당시에는 병원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간병 복지 시스템을 제공하는 제도가 정착되기 전이었기에, 의식이 없는 중증 환자를 돌보는 몫은 온전히 사적인 간병 인력이나 보호자의 독박 노동에 의지해야만 하던 척박한 시절이었습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수소문 끝에 먼 친척이라 소개된 중년의 남자 한 분을 간병인으로 고용하여 병실로 모셔왔는데요. 장기적인 돌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간병인은 1년의 기간을 계산하여 수천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비용을 선입금으로 먼저 정착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절박했던 보호자 측은 그 요구를 받아들여 선불 대금을 전액 지급했고, 그렇게 간이침대 하나에 의지한 채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고단한 장기 돌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4시간의 체위 변경 오다와 밤샘 석션의 고단함 남자 간병인은 중환자실의 낯선 환경 속에서도 간호사들의 처치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지침을 부지런히 학습하며 환자를 돌보는 실무를 완벽하게 익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배꼽 주변으로 연결된 급식 튜브를 통해 정밀하게 영양액을 주입하고, 가래가 끓어오를 때마다 흡인기 파이프를 능숙하게 다루며 환자의 기도 안전망을 확보해 냈는데요. 환자의 위생 관리와 관절 구축을 막기 위한 수동적 운동까지 성심성의껏 수행하는 그의 모습은 의료진이 보기에도 참으로 대견하고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보험영업의 달콤한 구인 지표와 선지급 수수료 환수 조항의 사각지대

인생의 예기치 못한 터닝포인트에서 경력이 잠시 멈춰 서게 되었을 때, 당장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생계의 엄혹한 무게는 우리로 하여금 낯선 선택지 앞에 서게 만들곤 합니다. 간호사 협회를 비롯한 여러 구직 사이트를 부지런히 뒤적이며 다시 일어설 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정작 평일 낮 시간의 벽은 높기만 했는데요. 유일하게 문을 연 것처럼 보였던 손해보험회사의 구인 공고는 참으로 달콤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화면 위에 선명하게 적혀 있던 수백만 원 단위의 높은 정착 급여 지표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라는 효율적인 근무 시간은, 새로운 돌파구가 간절했던 제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지점장과의 면접 자리에서는 수당 구조에 대한 명확한 행정적 산식이나 계약 조건은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시대가 바뀌어 과거와 같은 개척 영업 대신 고품질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 가 무상으로 제공되기에 누구나 손쉽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절박한 마음에 서둘러 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취득한 뒤 출근한 일터의 현실은, 처음 마주했던 약속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요. 배정받은 고객들은 대부분 완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였고, 실무의 공백이 깊어질 무렵 관리자들은 컴퓨터 모니터의 전산 화면을 보여주며 제 가족의 보장 내역을 빌미로 자가 계약을 은근히 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의심도 없이 아이를 위한 정직한 보장이라 믿고 체결했던 그 계약이, 실상은 변칙적인 수당 보전을 위한 가혹한 굴레의 시작이었음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수당 생태계의 민낯과 변칙적인 정착 지원의 굴레 시간이 흐르며 마주한 조직의 수당 생태계는 참으로 척박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구인 광고에 명시되었던 거창한 숫자는 온전히 실적과 자가 계약을 쥐어짜 내야만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허상이었으며,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동료들은 며칠간의 고단한 노동에 대한 대가로 고작 수십만 원의 최소 비용만을 손에 쥔 채 ...

텅 빈 모니터 앞에서 새겨나가는 정직한 글쓰기와 내면의 이정표

어떠한 일도 내 뜻대로 쉽게 풀리지 않고 현실의 매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올 때, 인간은 누구나 일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만히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나 기적 같은 구원을 갈망하곤 합니다. 벌써 여러 주째 온 신경을 집중하여 글방의 기록들을 다듬고 수정해 나가는 여정이 바로 그렇습니다. 참으로 고단하고 지치는 길임을 온몸으로 절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온전하게 통하는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 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깊은 사색에 잠기곤 하는데요. 겉보기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유려하게 가치 있는 서사를 직조해 내는 세상의 수많은 창작자들의 든든한 발걸음을 지켜볼 때면,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과 함께 스스로의 부족함이 밀려와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이 아득한 터널 속에서 매주 차가운 거절의 메일을 마주할 때마다, 차라리 아무런 감정도 고뇌도 없는 기계 장치나 다른 존재가 되어 이 힘겨운 과정을 대신 넘어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밀려오기도 합니다. 내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생계의 엄혹한 무게와 본가에서 겪어내야 하는 날 선 상처들이 너무 가혹하기에, 차라리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는 서글픈 체념이 불쑥 고개를 드는 것인데요. 현실살이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그 간절한 다짐의 바탕에는,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진짜 현실이 서민의 경계를 넘어 너무나 가혹한 그늘로 나를 내몰고 있다는 불행한 자각이 깔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긴 시간 동안 오직 정직한 글쓰기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이 공간에 삶의 자취를 새겨나가는 동안, 정작 현실의 다른 기회나 일상적인 통로들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 채 스스로를 좁은 방구석에 고립시켜 오곤 했습니다. 사회적인 경력이 잠시 멈춰 서게 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당장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생계의 엄혹한 무게를 오롯이 제 손끝으로 가꾸어가는 이 글방의 성과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

정형외과 병동에서 마주했던 욕창 환자의 사투, 그리고 시스템이 지켜야 할 존엄성

인생의 한 시절을 병원의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서 보내며 마주했던 수많은 생사의 자취들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화두로 남아있곤 합니다. 꿈을 안고 대학병원에 처음 입사해 정형외과 병동에 배치되었던 신입 시절, 제 기억 한 구석에 가장 아프게 자리 잡고 있는 한 남자 환자분과의 만남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분은 온몸의 살점이 문드러지는 욕창 단계 중 가장 치명적이고 심각하다는 4단계까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상처는 한 군데가 아니라 골반 옆쪽부터 허벅지 라인까지 여러 군데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매일 아침 드레싱을 위해 붕대를 풀어낼 때마다 허연 뼈가 그대로 들여다보일 정도로 상태가 참혹했습니다. 당시 전공의 1년차 선생님은 상처 속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농과 괴사 조직을 큐렛으로 사정없이 긁어내야만 했습니다. 원체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으면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치료였기에, 여러 상처 부위를 그렇게 긁어내며 처치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습니다. 매일 오전 치료가 시작될 때마다 온몸을 엄습하는 극심한 통증을 견디다 못한 환자분은 "이제 그만 하세요" 라며 처절한 비명 섞인 절규를 외치셨습니다. 상처 한 곳의 치료도 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터져 나오는 그 고통스러운 외침을 들을 때면, 드레싱 카트를 붙잡고 서 있던 신입 간호사였던 제 마음도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까맣게 타들어 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정형외과적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고, 입원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는 이유로 병원 시스템상 퇴원을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혹은 전문적인 간병인 제도가 전혀 없던 척박한 시절이었습니다. 대학병원을 나가게 되면 갈 곳이라곤 입원실이 딸린 동네의 작은 개인병원이 전부였기에, 보호자분이 마주한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퇴원 소식 앞에 보호자분은 의사 선생님의 가운 자락을 붙잡듯 간절하게 매달리며, 제발 ...

계단 아래 멈춰 선 발걸음, 세상의 무관심 속에 가려진 어느 이웃의 흔적을 쫓다

얼마 전 동네에서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허망하게 잊히고 만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동네 시장에서도 워낙 유명하셨고 방송에도 몇 번 나오신 분이었습니다.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이웃들을 마주하셨던 분이라, 예전에 저희 어머니 댁에도 한 번 다녀가신 적이 있고 저 역시 은행이나 길가에서 우연히 자주 뵌 적이 있는 아주머니였습니다. 작은 키에 가녀린 체형, 그리고 늘 머리를 양 갈래로 정성껏 땋아 아기자기한 머리핀을 잔뜩 꽂고 다니셨으며, 한 번 땋은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감으신다던 특유의 다정하고 선한 인상이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게 남아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늘 어머니만을 애타게 찾으셨다는데, 끝내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품에 안겨보지 못한 채 차가운 계단 아래로 떨어져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평온해 보이는 우리 일상의 이면에는 이처럼 소외된 약자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갑작스러운 비극이 늘 소리 없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사고가 알려진 이후, 동네 이웃들 사이에서는 아주머니의 허망한 추락을 두고 여러 무성한 소문과 의혹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억울한 사정이나 말 못 할 사연이 차디찬 계단 그늘 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깊은 의구심이 가슴 한구석을 짓누릅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주변의 단편적인 전언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라, 선뜻 정의로운 척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거나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 괜한 오해를 사거나, 되레 무고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딜레마 속에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가만히 숨을 고르며, 그저 정직한 글로서나마 이 외로운 자취를 이곳에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우리가 흔히 거대하고 화려한 사회적 이슈에는 큰 관심을 두면서도, 정작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